Way Back Home 전시 오디오 가이드

전시장 내 작품 번호를 입력하면 이경미 작가의 작품 해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작품번호: 9 (지상층)

(왼) Nothing  130x160cm  Acrylic on canvas  2026
(오른) Manifesto: flood and tide  130x160cm  Acrylic on canvas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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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은 개념미술의 언어를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현실 안으로 다시 불러옵니다.

먼저 〈Nothing〉은 조셉 코수스의 1967년작 《Nothing》을 떠올리게 합니다. 코수스가 사전적 정의를 통해 언어와 개념으로서의 예술을 탐구했다면, 이경미 작가와 김시경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무언가를 욕망하고 소유하는 방식에 주목합니다.

작가들에게 ‘Nothing’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갖고 싶었던 것이 실제로 내 것이 되는 순간, 욕망이 사라지고 남는 공허함에 가깝습니다. 원하던 대상은 소유되는 순간 더 이상 꿈이 아니라 물건이 되고, 그 자리에 이상하게 비어 있는 감각이 남습니다.

작품 속 문장들은 선반 위의 텍스트 작업, “I don’t need this but I want it”, “We’ve got plenty of nothing”과도 연결됩니다. 필요하지 않지만 갖고 싶은 것,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비어 있다고 느끼는 마음. 이 작업은 현대 소비사회 안에서 반복되는 욕망과 소유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이 문장들은 〈New Vertical Painting〉의 회화적 바탕 위에 놓입니다. 수십 겹의 물감을 쌓고 다시 긁어낸 표면은, 욕망과 소유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처럼 보입니다. 그 위에 놓인 ‘Nothing’은 모든 것이 축적된 끝에 도달하는 하나의 영점처럼 자리합니다.

함께 놓인 〈Manifesto〉는 조지 마키우나스가 1963년에 발표한 플럭서스 선언문을 차용한 작업입니다. 플럭서스는 예술의 엘리트주의와 상업주의를 거부하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운동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선언문은 또 다른 역설을 만들어냅니다. 반예술과 반상업을 외쳤던 문장이, 이제는 거대한 미술 시장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다시 읽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혁명적 언어는 현재의 예술 시스템 안에서 오히려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장치가 됩니다.

〈Nothing〉과 〈Manifesto〉는 모두 같은 회화적 표면 위에서 작동합니다. 쌓이고, 깎이고, 다시 드러나는 색의 층위는 미술 시장 안에서 계속 축적되고 재생산되는 가치의 구조를 닮아 있습니다.

이 두 작업은 예술이 무엇인지 단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유할 수 없는 예술의 본질과, 모든 것을 소유의 대상으로 바꾸려는 현실 사이의 긴장을 보여줍니다. 그 긴장 속에서 작품은 하나의 역설적인 영점, 다시 생각이 시작되는 자리로 관람객을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