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September 2025평창동일번지 건축
평창동일번지는 문화센터와 레지던스, 아티스트 하우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 벨기에 대사관저 부지에 2025년 9월에 완공되었습니다.
땅의 순리를 따르고, 시간의 켜를 쌓다.
평창동의 가파른 경사와 북한산의 능선이 만나는 곳, 이곳의 건축은 위로 솟아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지면의 흐름을 읽고 그 낮은 자세를 따라가기를 선택했습니다. 노자가 말한 '지법천(지법천)', 즉 땅이 하늘을 따르듯 자연의 질서 속에 스스로의 자리를 찾은 평창동일번지의 건축적 서사를 들려드립니다.
절제된 진입이 주는 정서적 전이 도로와 건축물 사이에 의도된 여백을 두어 내부로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진입 방식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예술을 마주할 준비를 하게 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동선의 굴곡을 통해 시선을 조절하는 구조는, 우리 전통 건축의 서원(書院)에서 느껴지는 깊은 공간감과 맥을 같이 합니다. 켜켜이 쌓인 공간의 층을 통과하며 마주하게 되는 평창동의 정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절제된 진입이 주는 정서적 전이 도로와 건축물 사이에 의도된 여백을 두어 내부로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진입 방식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예술을 마주할 준비를 하게 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동선의 굴곡을 통해 시선을 조절하는 구조는, 우리 전통 건축의 서원(書院)에서 느껴지는 깊은 공간감과 맥을 같이 합니다. 켜켜이 쌓인 공간의 층을 통과하며 마주하게 되는 평창동의 정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구조가 곧 디자인이 되는 '와플 천장'의 미학 지상 1층의 탁 트인 대공간을 완성하는 격자형 구조 천장 (Waffle Slab)은 이 집의 시각적 중심이자 기술적 성취입니다.
빛과 시선의 확장: 천장의 격자 틈새는 창을 뚫고 외부로 이어지며 은은한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입니다. 이는 실내의 시선을 주변 풍경으로 무한히 확장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전통의 현대적 번역: 기둥 없는 공간을 가능케 하는 이 반복적인 격자 구조는, 전통 목구조에서 '보'와 '도리'가 만들어내던 수평적 깊이감을 현대적인 콘크리트 언어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기능적 경쾌함: 와플폼 중앙의 슬릿(Slit)은 조명 시스템을 매립하여 시각적 간결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구조체에 경쾌한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천연 슬레이트' 건축물의 외관을 감싸는 천연 슬레이트는 수억 년의 시간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자연의 기록입니다.
자연과의 공명: 날씨와 빛의 각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색감과 질감을 보여주며, 인공적인 자재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를 선사합니다.
영속적인 아름다움: 뛰어난 내구성을 바탕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표면에 축적되는 세월의 흔적은, 건축물을 밝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더욱 또렷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평창동일번지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세 개의 독립된 공간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예술적 서사를 완성합니다.
풍경 하나 : 영감을 나누는 '아트하우스' 기둥 없이 시원하게 뻗은 와플 구조의 천장이 돋보이는 창의적 공간입니다. 천장의 격자 틈새로 스며드는 은은한 빛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예술가와 대중이 경계 없이 소통하는 현대적 예술 살롱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풍경 둘 : 삶이 예술이 되는 '주택' 북한산의 능선을 닮은 낮은 지붕 아래, 일상의 평온함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경사진 땅의 형질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앉힘으로써, 집 안 어디서든 평창동의 사계절을 빌려올 수 있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실현했습니다.
풍경 셋: 쉼과 전이가 있는 '아티스트 하우스' 본채와 분리되어 정적인 휴식을 선사하는 별채 공간입니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절제된 진입로와 여백의 미는 방문객들에게 일상을 잠시 잊게 하는 정서적 전이를 경험하게 하며, 자연 소재인 천연 슬레이트의 질감을 통해 시간의 깊이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평창동일번지를 설계한 이성범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담은 에세이를 공유합니다.
낮게 놓인 세 개의 풍경
서울 북쪽 경계의 평창동은 땅의 형상이 이곳의 질서를 먼저 정하는 장소다. 북한산 능선이 서로 포개지며 형성한 완만한 경사와 낮은 밀도의 주거 그리고 굽이치는 생활가로가 이 지역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이곳에서 건축은 위로 솟아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지면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따라 단면을 만들어가는 일이 더 자연스럽다.
노자는 “인법지, 지법천”이라 했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른다는 이 문장은 건축의 형식 이전에 자세를 말한다. 대지를 평평하게 정리해 중립적인 상태로 만드는 대신 경사의 흐름을 공간 구성의 근거로 삼고자 했다. 낮게 앉은 매스는 주변 주택의 조망을 존중하며 능선의 흐름을 이어가도록 해 배경 위에 놓인 오브제처럼 풍경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건축물들은 생활가로와 맞닿아 곧바로 출입문이 놓이지 않는다. 도로와 건축 사이에 여백을 두고 동선은 한 번 꺾이며 천천히 내부로 스며든다. 직선으로 관통하는 진입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는 병산서원이나 옥산서원에서 경험되는 공간구조와 닮았다. 대문을 지나 마당을 건너고 다시 한 단을 오르며 시선과 몸은 여러 겹의 층을 통과한다. 평창동 역시 가로에서는 전면의 원경을 즉시 허락하지 않는다. 낮게 놓인 매스와 완충 공간이 시야를 조율하고 내부에 이르러서야 정면의 풍경이 힘 있게 열린다. 공간은 한 번에 펼쳐지지 않고 스퀀스를 따라 깊어진다.
124여 평 규모의 평창동일번지 문화동은 경사를 따라 두 개 층으로 나뉜다. 지반의 레벨 차는 내부 프로그램의 위계를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도로에 가까운 상부는 눌러 앉혀 주변 시선을 가리지 않고 경사를 따라 전면으로, 점층적으로 드러나는 매스는 응시의 방향을 또렷하게 설정한다. 과장된 제스처 대신 절제된 정면성이 자리한다.
지상 1층의 대공간은 와플 구조의 천장을 통해 공간적 리듬을 형성한다. 반복되는 격자는 구조적 질서를 드러내면서도 정면 방향으로의 확장감을 만든다. 이는 전통 목구조에서 보와 도리가 만들어내던 깊이를 현대적으로 번역한 장면이다. 만곡된 지붕선은 주변 산세의 흐름을 반영하고 양 끝에서는 인접 주택의 시선을 절제하는 벽체로 이어진다. 경계를 세우면서도 풍경을 끌어들이는 전통 정원의 원리가 이곳에서 다른 재료와 구조로 구현된다.
지붕 끝 선보다 앞으로 뻗은 보는 빛의 틈을 만든다. 자연광은 부드럽게 스며들어 전시 공간을 감싸고 구조의 깊이를 강조한다. 전통 건축의 처마 아래에서 번지던 확산광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 끝에서 인왕산과 북악산의 능선이 전면 통창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속에 자리한다. 풍경은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하부 공간은 또 하나의 전면공간을 갖는다. 대형 스크린을 갖춘 이 장소는 전시, 강연, 촬영 등 다양한 활동을 담는다. 세 개로 나누어진 대형 슬라이딩창을 열면 조경과 내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루와 마당의 관계처럼 실내와 실외는 분명히 구획되면서도 언제든 연결될 수 있다. 철재로 제작된 뜬 구조의 가구는 기둥에 매달려 긴장을 만들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는 서비스의 기능을 한다.
나란히 놓인 주거 역시 같은 지형 위에서 단면의 질서를 따른다. 회색 벽돌과 천연 슬레이트는 주변 색감과 어우러지며 낮은 지붕선을 형성한다. 2층 레벨에서 시작되는 진입 동선은 북측 입면을 따라 흘러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열린 시각적 개방이 펼쳐진다. 주방과 거실은 반 개 층 아래의 라이브러리와 연결되며 위와 아래의 시선이 교차한다. 침실과 자녀방은 전면 마당과 이어져 일상의 장면을 만든다. 공간은 그 높이를 달리하며 다층적으로 읽히고 켜를 이루며 동선과 시선이 겹친다.
마당에 놓인 별채, 아티스트 하우스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게스트룸이면서 예술가의 사유 공간이 된다. 독립된 성격을 지니면서도 다른 건축물과의 전체적 질서 안에 자연스럽게 놓인다. 외부의 견고한 천연슬레이트 마감의 속살에는 따뜻한 목재로 온기를 더한다. 세 동 사이의 틈에는 기존 지반의 기울기가 이어지고 조경은 흐르듯 자리한다. 서로 다른 프로그램은 같은 재료의 어휘와 낮은 스케일 속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엮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전통적인 공간을 조직하는 원리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오늘의 구조와 재료 안에 담고자 했다. 전이의 과정, 단면의 켜, 차경의 시선, 낮게 얹힌 지붕선은 시대를 넘어 유효한 질서라 생각했다. 이 공간이 시간이 쌓일수록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전시와 공연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살롱의 대화가 저녁의 빛과 함께 이어지며 마당과 하부 공간이 계절에 따라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주거와 문화가 나란히 놓인 이 공간이 지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평창동의 능선 아래에서 사람과 풍경의 흐름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장소로 자리하길 희망한다.
이성범 건축사무소 소장 이성범 https://www.instagram.com/architect_lsb/
평창동일번지 정원를 설계·시공한 박소현 가든 디자이너의 에세이를 공유합니다.
빛의 공간에 그림자를 그리다: 시간과 삶이 쌓이는 평창동일번지의 정원
북한산 형제봉 아래, 수려한 자연과 도심의 감각이 조화롭게 맞닿은 곳.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문화복합공간 ‘평창동일번지’의 정원을 소개합니다.
평창동 일번지의 정원을 조성하는 일은 ‘빛만 가득한 공간에 깊이 있는 그림자를 그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축물의 당당함 위에, 자연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음영과 입체감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위적인 직선을 배제하고, 건축물의 흐름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비정형적 곡선의 테라스와 화단을 배치했습니다. 완만한 곡선이 그리는 선율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아늑한 깊이감을 만들어내며, 방문객에게 시각적 편안함과 정서적 여유를 선사합니다.
평창동 일번지의 정원은 오랜 세월 이 땅의 기후와 풍토를 견뎌온 국내 자생종을 중심으로 식재하여, 평창동의 거친 자연 속에서도 스스로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디자인했습니다. 단순히 꽃이 피어나는 화려한 한 철의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매일 다른 표정을 짓는 ‘사계절의 서사’가 있는 정원입니다.
정원은 완성된 박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유기체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 나직한 대화, 그리고 계절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켜켜이 쌓일 때 정원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사용자의 흔적과 시간의 층(層)이 더해질수록 더욱 풍요로워질 평창동 일번지의 풍경 속에서, 자연과 예술이 주는 진정한 휴식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박소현 가든 디자이너 https://www.instagram.com/guru_at_home/
평창동일번지 건축 프로젝트 파트너
건축 설계 · 감리: 이성범 건축사 사무소 http://leesungbeom.com/
건축 시공: (주)MK종합건설 https://www.mkcni.co.kr/
가든 설계 · 시공: https://www.instagram.com/guru_at_home/
가구: 팀오더메이드 https://teamordermade.com/
인테리어 컨설팅: 이로디자인플래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