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순리를 따르고, 시간의 켜를 쌓다.
평창동의 가파른 경사와 북한산의 능선이 만나는 곳, 평창동일번지의 건축은 위로 솟아 존재를 과시하기보다 지면의 흐름을 읽고 그 낮은 자세를 따라가기를 선택했습니다. 노자가 말한 ‘지법천(地法天)’, 즉 땅이 하늘을 따르듯 자연의 질서 속에 고요히 스스로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에서부터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도로와 건축물 사이에 의도된 여백을 두어 한 번에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고, 동선의 굴곡을 통해 서서히 내부로 스며들도록 시선을 조절합니다.
마치 우리 전통 서원(書院)을 거닐 때처럼 깊은 공간감을 선사하는 이 절제된 진입 방식은, 방문객이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온전히 예술을 마주할 수 있도록 깊은 정서적 전이를 이끌어냅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공간의 층을 통과하여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평창동의 정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됩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대지와 호흡하는 공간
Architecture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천연 슬레이트(Natural Slate)'
건축물의 외관을 묵직하게 감싸는 천연 슬레이트는 수억 년의 시간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자연의 위대한 기록입니다. 날씨와 빛의 각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색감과 질감을 보여주는 이 자재는 인공물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공명을 선사합니다.
뛰어난 내구성을 지닌 슬레이트 표면 위로는 앞으로의 시간과 계절이 고스란히 내려앉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축적되는 그 세월의 흔적은 건축물을 단순히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넘어, 공간이 품은 가치를 더욱 또렷하고 풍성하게 무르익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구조가 곧 디자인이 되는 '와플 천장(Waffle Slab)'
지상 1층의 탁 트인 대공간을 완성하는 격자형 와플 천장은 이 집의 시각적 중심이자 기술적 성취입니다. 기둥 없이 넓은 공간을 가능케 한 이 반복적인 구조는, 우리 전통 목구조에서 '보'와 '도리'가 만들어내던 수평적 깊이감을 현대적인 콘크리트 언어로 우아하게 재해석한 결과입니다.
천장의 격자 틈새는 창을 뚫고 외부로 이어지며 은은한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실내에 머무는 시선을 주변 풍경으로 무한히 확장시킵니다. 또한 와플폼 중앙의 슬릿(Slit)에 조명 시스템을 보이지 않게 매립함으로써 시각적 간결함을 유지하고,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체에 경쾌한 리듬감을 부여했습니다.
건축 에세이
낮게 놓인 세 개의 풍경
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는 건축의 형식 이전에 대지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평창동일번지는 북한산 능선이 포개지는 완만한 경사를 깎아내는 대신, 그 흐름을 공간 구성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낮게 앉은 매스는 주변 주택의 조망을 존중하며, 배경 위에 놓인 오브제처럼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찾습니다.
절제된 진입과 전이의 경험 도로와 건축물 사이에는 의도된 여백이 존재합니다. 한 번에 내부를 허락하지 않고 동선이 한 번 꺾이며 서서히 스며드는 진입 방식은, 병산서원이나 옥산서원의 공간 구조와 닮았습니다. 켜켜이 쌓인 공간의 층을 통과해야만 정면의 풍경이 힘 있게 열리며, 방문객은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예술과 마주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구조가 곧 디자인이 되는 공간 문화동 지상 1층의 탁 트인 대공간을 완성하는 '와플 천장(Waffle Slab)'은 기둥 없이 공간을 지탱하는 기술적 성취이자 시각적 중심입니다. 반복되는 격자는 전통 목구조의 '보'와 '도리'가 만들던 깊이감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것이며, 격자 틈새로 스며드는 은은한 빛은 시선을 주변 풍경으로 무한히 확장시킵니다.
세월을 기록하는 외관 건축물 외부를 감싸는 '천연 슬레이트'는 수억 년의 시간이 퇴적된 자연의 기록입니다. 날씨와 빛의 각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질감을 보여주며, 시간이 흐를수록 표면에 축적되는 세월의 흔적은 건축물의 가치를 더욱 또렷하고 풍성하게 빚어냅니다. 영감을 나누는 아트하우스, 삶이 예술이 되는 주거 공간, 쉼과 전이가 있는 아티스트 하우스(별채). 이 세 개의 독립된 공간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면서도 동일한 재료의 어휘 속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엮입니다.
— 이성범, 이성범 건축사무소 소장
정원
빛의 공간에 그림자를 그리다
평창동일번지의 정원을 조성하는 일은 ‘빛만 가득한 공간에 깊이 있는 그림자를 그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축물의 당당함 위에, 자연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음영과 입체감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인위적인 직선을 배제하고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비정형적 곡선의 테라스를 배치했습니다. 완만한 곡선이 그리는 선율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아늑한 깊이감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오랜 세월 이 땅의 기후를 견뎌온 국내 자생종을 중심으로 식재하여, 화려한 한 철이 아닌 매일 다른 표정을 짓는 ‘사계절의 서사’를 담았습니다.
정원은 완성된 박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유기체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나직한 대화, 계절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켜켜이 쌓일 때 정원은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 박소현, 가든 디자이너
PROJECT PARTNERS
건축설계·감리
이성범 건축사 사무소
http://leesungbeom.com/
건축시공
(주)MK 종합건설
https://www.mkcni.co.kr/
가든 설계·시공
가구
인테리어 컨설팅
이로다인플레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