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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7 (지상층)Study of Color and Perspective II - CASSANDRE 130x130cm Oil & Acrylic on canvas 2022-2026
〈New Vertical Painting〉 연작 / 카상드르와 알파벳
이 작품은 이경미 작가의 〈New Vertical Painting〉 시리즈가 이어온 회화적 실험을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영역으로 확장한 작업입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여러 겹 쌓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표면은 단순한 바탕이 아니라, 시간과 이미지가 겹겹이 쌓인 회화적 지층이 됩니다.
이 작품의 중요한 출발점은 20세기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A.M. 카상드르(A.M. Cassandre)가 에르메스(Hermès)를 위해 디자인한 실크 스카프 〈Literatures〉입니다. 카상드르는 글자를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강렬한 시각 이미지로 다룬 인물입니다. 이경미 작가는 그가 만든 알파벳의 질서와 구조를 회화의 화면 안으로 가져옵니다.
알파벳은 한때 계몽과 지식의 확산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 글자와 이미지는 광고, 상품, 소비의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그런 변화의 과정을 하나의 화면 안에 겹쳐 보여줍니다.
견고하게 배열된 타이포그래피의 질서 위에는 나나아스트로, 미키마우스, 슈퍼맨, 만화적 말풍선 같은 대중문화의 기호들이 개입합니다. 고전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세계와 소비사회의 친숙한 이미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화면은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이경미 작가는 이 충돌을 통해 글자와 이미지, 디자인과 회화의 경계를 흐립니다. 화면 속 알파벳은 읽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보는 이미지가 되고, 나나아스트로와 대중문화의 기호들은 그 질서 안으로 들어와 화면을 흔듭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에서 온 이미지들은 하나의 원형 공간 안에서 겹치고, 충돌하며, 새로운 회화의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복제 가능한 스카프 디자인을 다시 물감의 두께와 손의 노동이 담긴 회화로 되돌립니다. 디자인에서 출발한 이미지는 회화 안에서 다시 고유한 표면을 얻습니다.
이 작품은 예술과 디자인, 숭고함과 키치, 지식과 소비의 경계가 뒤섞인 하나의 원형 우주처럼 펼쳐집니다. 관람객은 그 안에서 글자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가 다시 회화가 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