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 Back Home 전시 오디오 가이드

전시장 내 작품 번호를 입력하면 이경미 작가의 작품 해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작품번호: 4 (지상층)

The Mighty Nanaastro  Ø 120cm  Oil & Acrylic on canvas  2022-2026

Alphabet & Nanaastro  Ø 120cm  Oil & Acrylic on canvas  2022

A night of stargazing 2  Ø 120cm  Mixed media on canvas 2022-2026

오디오 듣기

〈New Vertical Painting〉시리즈

지금 보시는 세 개의 원형 캔버스는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쌓여 있습니다. 이경미 작가는 이 시리즈를 〈New Vertical Painting〉이라 부릅니다. 평면 회화이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이미지를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40겹 가까이 쌓아 올리고, 다시 일부를 깎아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표면은 마치 시간의 지층처럼 보입니다.

가장 아래의 화면에서부터 시선을 올려보면, 여러 시대의 이미지들이 서로 겹쳐져 있습니다. 고전 판화에서 가져온 종교적 도상, 천사와 영웅의 이미지, 천문학과 관측의 역사,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의 캐릭터들이 하나의 원형 화면 안에서 함께 회전합니다.

이경미 작가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페트루스 아피아누스의 천문학적 상상,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의 리본 배너 같은 도상들을 화면 안으로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대한 역사와 숭고한 신화를 그대로 따르기 위한 그림은 아닙니다. 작가는 그 안에 자신의 고유한 캐릭터인 나나아스트로를 등장시킵니다.

나나아스트로는 작가의 반려묘 나나에서 출발한 우주적 페르소나입니다. 픽셀처럼 작게 등장하는 나나는 신화 속 영웅이나 종교적 도상들과 나란히 놓이며, 거대하고 엄숙한 미술사의 무게를 조금은 유쾌하게 흔들어 놓습니다.

화면 곳곳을 가로지르는 리본 배너도 중요한 장치입니다. 과거 미술에서 신성한 문장이나 선언을 담았던 리본은, 이 작품 안에서 과거와 현재, 이미지와 언어, 현실과 가상을 이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그 안에 새겨진 문장들은 나나아스트로에게 작지만 단단한 선언의 목소리를 부여합니다.

강렬한 오렌지빛 방사형 선들은 나나의 또 다른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한국에서 ‘노란 고양이’로 불리던 나나가 미국 동물병원 차트에서는 ‘오렌지 태비’로 기록되었던 경험은, 같은 존재도 문화와 언어에 따라 다르게 분류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오렌지색은 그 차이에서 비롯된 에너지이자, 나나아스트로의 시그니처가 됩니다.

이 세 개의 원형 캔버스는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보입니다. 고전적 이미지와 팝적인 기호, 과거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 종교적 숭고함과 유쾌한 캐릭터가 한 화면 안에서 뒤섞입니다.

이경미 작가는 이 복잡한 원형의 세계 안에서 묻습니다. 오늘날 회화에서 이미지를 쌓고 배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작고 사적인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세 개의 원형 캔버스를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바라보며, 시간의 지층을 따라 올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 끝에서 관람객은 거대한 미술사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나나아스트로가 전하는 따뜻하고 유쾌한 위로의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